오레이모 최종화
1. 일단 근친에 대한 호오는 잠시 접어두고, 이야기 전개 등으로 본다면 누구 결말로 나든 간에 논란이 났을 결말이라고 보여집니다. 다만 키리노를 '골랐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 있고, 키리노를 '고르지 않아도'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는게 포인트죠. 그리고 꽤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키리노를 '골랐기 때문에' 생기는 이점(Benefit)이 있습니다. 이게 없었다면 오레이모의 결말은 논란이 아닌 커다란 '비난'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애니가 보여준 '결말'을 지지하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적습니다만 저는 결말 자체에 대해선 중립적입니다. 그러나 제 취향에 따른 호오와 관계없이 '이 전개와 결말에 꽃일 사람이 분명히 있다'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적은 것입니다.

2. 최종화 부근의 전개와 결말, 특히 '전개'가 지니는 가장 큰 강점은 사건의 흐름이나 해결 등의 '움직임'이 상당히 호쾌한 데에 있습니다. 쿠로네코 차고, 커플 많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키리노에게 고백하고, 카나코 차고, 막판에 마나미까지 차낸 뒤 교회에서 턱시도 입으며 키리노에게 키스를 받은 일련의 사건들이 대범하게 표현되었다는 것이죠. 사건 자체뿐만이 아니라 각 사건의 해결책 역시 상당히 '통 크게' 나갑니다. 이를테면 키리노에게 고백할 때는 쿠로네코와 사오리가 커플이 잔뜩 있는 거리에서 스피커까지 동원하며 쿄스케가 (자기 여동생임에도 불구하고) 키리노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려준다던가, 키리노 Vs. 마나미에서는 서로가 로 블로(!)를 날린다던가 등이 말이죠.

이런 호쾌한 움직임은 '강렬함'을 낳아 시청자에게 현 상황에 대한 각인을 시켜줍니다. 몇십 분 내내 대사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고요. 이런게 가능한 이유는

- 쿄스케는 키리노를 '연애대상으로' 좋아한다
- 쿄스케는 다른 히로인보다 키리노를 더 좋아한다
- 비록 기간한정연애지만 그 기간동안에는 키리노에 더 신경쓰고 싶다
- 그러므로 다른 히로인은 아쉽지만 포기해야 한다
- 그러니 기왕 포기할거 화끈하게 포기하자

이렇게 이어지기 때문. 그래서 느끼는 건데, 이 전개와 결말은 키리노와 쿄스케가 맺어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상의 전개'입니다. 그냥 맺어진 것도 아니고 쾌도난마와 같이 맺어졌기 때문에 이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강하다는 것이죠.

3. 문제는 이 이점(Benefit)이 과연 작품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제시했느냐라는 점입니다. 이 애니에서 호쾌한 전개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 몇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최종적인 선택이 키리노가 아닌 쿠로네코나 아야세, 마나미 등 다른 히로인을 택해도 문제가 생길 부분이죠.

- 우선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이들을 무 자르듯이 베어넘기기엔 캐릭터성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각 히로인 간의 팬이 서로에 대해 배타적이기도 하죠. 이 상황에서 적절한 협상을 하지 않고 끝을 냈다면 다른 히로인들의 팬들은 박탈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 그 다음으로 히로인들의 캐릭터성이 크지만 정작 작품 자체는 의외로 일상물적인 매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연애 플래그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 자체의 움직임은 막판의 소용돌이를 제외하면 오레이모가 가지는 '세계'를 점진적으로 확대시키고 있었죠. 때문에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가 수면 밑으로만 있었고 전면에서는 쿄스케, 키리노와 그 주변 인물들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나오는 '현실에서 보여지는 오타쿠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연애 이야기가 나온뒤 갑작스럽게 스트레이트로 진행되었다는 것이죠. 적어도 쿠로네코와의 첫 연애 시점에서는 이렇게 팍 나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전 이야기와 현재 결말 간의 '갭'이 상당히 큽니다.

이와는 별도로 '키리노를 택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이 몇 있습니다.

- 일단 키리노 본인의 이미지가 상당히 나쁘다는 점. 키리노의 팬덤 자체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안티를 무시할 정도로 큰 것도 아니죠. 이 부분은 꽤 묘한게, 막판 전개에서 키리노의 '나쁜 이미지'는 의외로 별로 안 나옵니다.(마나미하고 일대일 붙을때야 나올 정도) 이전까지 '쌓아온' 키리노의 이미지가 있는 것이죠. 반대로 말하자면 이제까지 키리노의 '이미지'를 알면서도 오히려 먼저 접근한 쿄스케가 이상하게 보여집니다.
- 그리고 상당히 중요한 점이 있는데, 키리노의 팬이든 안티이든, 우리 사회 대다수는 근친이 터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근친을 다루는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근친을 다루는 작품에서는 이 '터부'라는 부분(정확히 말하자면 '터부'이기 때문에 끼치는 파급력)이 작품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든 아니면 무의식적이든 '터부'의 영향을 받습니다.(특히 이복남매가 아닌 '친남매'의 경우에는 실제로 맺어질 경우 반드시 '터부'에 대해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상당히 중요한데, 키리노를 택하게 되면 다른 히로인을 택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서 불리하죠.

4. 개인적으로는 이번 결말 전개 보면서 생각났던게 나노하 A`s입니다. 나노하 A`s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게 바로 시원하게 나가는 전개인데, 개인적으로는 A`s의 전개는 다루는 배경에 비해선 너무 '작은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야기할게 남아있는데 그거 생략하고 그냥 전개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죠.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번 결말 전개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알 것 같았습니다. 나노하 A`s에서 이런 스트레이트한 전개가 '질질 끌지 않고' 원하는 장면만 딱 보여주니 좋아하는 것이죠. 스포츠 경기에 별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하이라이트 모음집을 볼 때는 좋은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노하 A`s와 마찬가지로 이 애니의 결말 전개에 대해선 그리 감명깊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화끈하긴 하지만 '베스트 결말'은 아니니까요. 사실 위의 문제점을 총합해서 이 애니의 '화끈한 전개'는 두 가지의 '커다란 문제점'으로 귀결됩니다.

- '필요한 장면'만 나오다보니까 필요한 장면을 '납득하게 만드는' 중간 장면이 없습니다. 따라서 각각의 이벤트에서 몰입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히로인을 찬다거나 등이 말이죠(개인적으론 카나코는 뜬금없이 왜 나와서 고백하고 차이는 이벤트가 '들어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것보다 주인공인 쿄스케가 언제, 어째서 '갑자기' 히로인을 차낼 생각까지 하면서 키리노를 좋아한 건지, 최종보스인 마나미가 어째서 쿄스케를 좋아하는지(1기때 나오긴 하지만 그 때 이후로는 인상이 옅었습니다) 등이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이런 부분은 통쾌한 접근법보단 세심한 접근법이 필요하죠.
- 메세지를 '직통'으로 때려버리기 때문에 역으로 메세지 '이외'의 부분이 지니는 존재감이 엄청나게 약해집니다. 예를 들자면 계란소년님께서 지적하신 유년기의 끝이라던가 魔神皇帝님께서 지적하신 깨끗이 정리했다라던가. 이런 지적들이 모조리 '근친연애'란 부분에 다 먹혀버립니다. 해당 지적들이 (중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결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히로인 광탈보다 더 건설적이며 인상깊은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근친 논란이 아닌 이 부분이 이 애니의 '화끈한 막판 전개'가 가진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메세지는 아니지만 주된 메세지를 보조할 수 있는 수단을 날려버렸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스디렉션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5. 그런 면에서 결말 전개에 있어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16화에서 키리노와 마나미가 나눈 주먹 맞다이 장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4, 15화의 전개도 충분히 파괴적이지만 이 장면의 전개만큼 흉포한 모습을 보여주진 않았기 때문이죠.

P. S : 개인적으로 쿄스케와 맺어지는 것과 상관없이 쿠로네코란 캐릭터는 확실히 내여귀가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캐릭터성을 지닌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특히나 쿄스케에게 '실연했을 때' 오히려 빛나는 캐릭터성이 있다는게 놀라운 따름. 어떤 부분에서 보자면 하나카나가 지닌 '무서운 연기'를 보여준 케이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캐릭터성, 연기와 커플링은 별개입니다. 이 두 개를 같은 선상에서 놓으면 문제가 좀 크죠.

Cast in the name of God
Ye not Guilty
by Hineo | 2013/08/20 23:59 | 애니메를 보다 | 트랙백(2) | 덧글(7)
Tracked from перестро́йка at 2013/08/21 01:56

제목 : 내여귀 최종화 잡설.
오레이모 최종화 그놈의 내여귀 최종화가 아주 핵폭탄을 떨궜더군요. 일본에서 최종권 플라잉겟이 터지면서 1차로 난리가 나고, 그게 TVA로 나오면서 최종타. 일단 본인은 후시미 츠카사를 조낸 까야 한다고 생각하는 축인데...그거에 대해서 간단하게 갑니다. 존대말 안 쓰고 그냥 가니까 민감하신 분들은 뒤로. 횡설수설 주의. 1.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글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이고, 작가 본인은 그 세상의 창조주다. 그리고 그 작품 속 캐릭터들은......more

Tracked from Hineo, 중력에 혼.. at 2013/08/21 21:15

제목 : 조금 더 붙여서
오레이모 최종화 1. 최종화 감상문 작성할 때 특히 '템포' 부분에 집중한 것은 사실 고독한별님의 15화 감상문 포스팅에 일웹에서 '진격의 거인이나 초전자포S 같은 작품 보다 템포가 훨씬 마음에 든다'란 찬사가 있단 부분 때문입니다. 진격의 거인은 아예 논점 이탈이니까 제끼고(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에 있어서 핵심은 템포보단 '밀도'라고 봅니다) 제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초전자포S입니다. 1기인 초전자포와 2기인 초전자포S가 다......more

Commented by LionHeart at 2013/08/21 00:23
글 잘읽었습니다. 정말 잘 정리해주셨네요. 번역해서 작가님이나 편집자님께 보내고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전 작가님께서 이 작품이 싫어졌거나 결말을 고민하다 지쳐 고민하길 포기한 것은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네요. 제목에 충실한 엔딩을 갔어도 지금보다 한발만 덜 디뎠다면 이정도의 논란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Commented by Hineo at 2013/08/21 16:58
음, 그렇다기보단 오히려 작가와 편집부가 어느 정도 '의도하지 않았나'란 느낌이 더 강합니다. 좀 의외라고 할 수 있을텐데, 진짜로 고민하다 포기했다면 이 정도의 파워를 내보내긴 힘들기 때문이죠. 그럴 경우에는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큽니다.

다만 '싫어서'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배째! 이런 식이라면 가능성은 좀 있는 편. 다만 상영회에서의 발언 등을 보면 싫어서 이렇게 만든것 같은 기색은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세잎클로버 at 2013/08/21 01:13
14-16화를 보면서 성우들의 열연에 두번 소름이 돋았는데, 그 중 한 장면이 쿠로네코의 정말 서럽게 우는 장면이었고, 다른 한 장면은 '세이아땅~♡ 메리 크리스마스~♡'...
나도 오타쿠지만, 오타쿠 싫어하는 사람들이 왜 오타쿠를 욕하는지 알것만 같은 그런 느낌 입니다. ㅎㅎ
Commented by Hineo at 2013/08/21 16:59
그리고 오타쿠들이 왜 '취향은 존중되어야 합니다능!' 이러는지도 알 수 있죠(...)
Commented by 카군 at 2013/08/21 01:57
제 경우에는 작가의 역량 부족이라고 보는 축인지라...인기 있는 캐릭터들을 이렇게 한번에 우르르 퇴장시킬 거였으면 어느 정도 품위는 보장을 해줬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뭔가 심각하게 횡설수설이긴 한데 트랙백 걸었습니다.-_-;;
Commented by Hineo at 2013/08/21 17:04
사실 이렇게 스트레이트한 전개를 가면서 히로인들을 퇴장시키는 전개를 '굳이' 택한 것은 카타르시스 내에 '다른 히로인을 굴복시킨다'란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말 직전까지 오레이모 팬층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죠.

트랙백한 글의 덧글로 적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쿠로네코는 작가가 꽤 신경써서 퇴장시켰다고 봅니다. 이 이상으로 소위 '품위를 보장해준다'로 간다면 작품 자체가 치정극(!)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Commented by 카군 at 2013/08/21 19:06
하기야, 그렇게 갔다간 정말 끈적끈적하게 흘러가긴 하겠습니다-_-;;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건 여전합니다. 자기가 창조해서 여태가지 끌어왔고, 지지하는 사람도 많은 캐릭터들을 무슨 키리노 루트로 가는 직선주로 낸다고 싸그리 불도저로 깔아뭉개고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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