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1. 어느 영상물이든 원작이 있는 영상물이 있고 없는 영상물이 있는데 이 영화는 원작이 있으니 원작이 있는 영상물을 놓고 보죠. 요건 단순하게 크게 두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작을 경험할(책을 보든 게임을 즐기든 뭐든간에) '필요가 있는' 영상물과 원작을 경험할 필요가 없는 영상물이죠.

일반적으로 제가 주로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원작에 대해 거의 '경전'이나 다름없는 원리주의적 해석을 최고로 추구하기 때문에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한' 영상물이 높게 평가받는 경우가 있지만(대표적으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 있겠습니다), 사실 그러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든 영상물이 반드시 '원작을 경험해야 한다'란 전제 조건을 달고 있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왠만하면 원작을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영상물이 의외로 많죠. 작품 선전도 있고 하니까. 하지만 개중에는 철저하게 '원작을 본 사람'만을 대상으로 반드시 원작을 먼저 즐길 것을 요구하는 영상물이 있습니다. 근래에 본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공의 경계 시리즈(5편만 봤지만)가 있겠죠.

원작을 경험해야하는 영상물은 또 다시 영상물의 '태도'에 따라 나뉘어집니다. 하지만 상당수가 작품 자체에서 원작을 경험할 것을 '강요'하는 작품이죠. 그것은, 그만큼 해당 작품이 갖고 있는 '주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즐길 작품은 아니니까 '니가 알아서 즐길 방법을 알아내라'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는 '원작을 먼저 즐겨야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협상(Deal)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 자체가 70년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오히려 '오래된 느낌'의 영화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성이죠.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오히려 이러한 특성의 영상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그나마 CANNAN 정도가 이런 특성을 '일부나마' 가진 애니라서 그런 것일까요.

2.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미 영화 자체에서 할 얘기가 엄청나게 많은 티가 느껴집니다. 단순히 떡밥을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뭔가 할 얘기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의도적으로 막아버린다는 느낌이 말이죠. 게다가 이 '막아버린다'라는 느낌이, '필요한 얘기만 딱 하고 끝낸다'라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필요한 얘기는 필요한 얘기 나름대로 하고, 거기에 '확장성'을 늘릴 수 있는 부분이 붙어있는 형태이죠. 이 확장성 자체가 영화만 봐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서 피터 길럼이 '두더지'의 정체를 확인하는 장면. 이때 피터의 심정은 영화만 봐선 절대 눈치 못챕니다(...)) 원작의 필요성이 늘어납니다. 아, 물론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는 확장성 또한 존재하지만요.(대표적으로 '체스말')

전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가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기 때문에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

3. 근데 이 부분을 반대로 뒤집으면... 그만큼 이야기가 '산만한지 복잡한지 모를' 이상야리꾸리(...)한 형태로 나온다는 얘기가 됩니다. 현재에서 과거 이야기로 넘어가는 부분이 애교로 보일 정도(왠만한 영화에서 이런 스타일로 과거 이야기 넘어갔다간 어렵다고 욕얻어 먹을 스타일인데도!). 게다가 배우들의 캐릭터 역시 이런 특이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멋모르고 보게 되면 캐릭터 자체가 안 잡히는 것은 물론이고 대체 왜 이게 명연기인지 모를 정도가 되어 버립니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리고 있는 게리 올드만의 조지 스마일리가 바로 그런 스타일의 대표적인 캐릭터죠.

당연하지만 이런 미로같은 스타일의 이야기 전개는 관객이 단 몇 분이라도 이야기를 놓치게 되면 전혀 이야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진도가 휙휙 나가버립니다(...) 사실 전부 보더라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니까. 재미있는 점은, 캐릭터적인 면에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모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바로 조지 스마일리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칼라와 조지 스마일리의 부인인 앤 스마일리인데, ...이 둘 모두 영화 내에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내기보단 일종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등장'은 하고 있으니 그나마 '캐릭터'라 할 수 있는거지...)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에서 전투기 타는 모습만 줄창 나오고 실제 '인간 모습'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 '티쳐'와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죠. 그나마 이 둘은 '몸'은 나왔으니 많이 양심적인 겁니다(!?!?)

4. 상당히 많이 기대하고 있는 영화였고 마침 청담 CGV의 이벤트(...) + 특화관 버프때문에 이번엔 좀 무리해서 청담 CGV에서 봤는데, 이런 특성때문에 개인적으로 청담 CGV에서 보는 것은 굉장히 비추라 느껴졌습니다. 특히 청담 CGV에서 이 영화에 할당된 영상관이 바로 beats by dr.dre관인데 이게 엄청난 실책이란 느낌. 확실히 오프닝 시퀀스도 그렇고 음향이 상당히 중요한 영화인건 사실인데... 그 음향이란게 상당히 '섬세한' 음향이라서 beats 헤드폰과 상성이 굉장히 안 맞습니다. 몇 분 꼈는데 무지하게 거슬리더군요. 이전에 동생으로부터 들은 beats 헤드폰은 돈값 못하는 헤드폰이란걸 아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오히려 트랜스포머 시리즈라던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같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beats by dr.dre관에 더 맞는듯.

기실, 이 영화에 더 맞는 상영관은 오히려 시네큐브 광화문같은 '예술 영화를 위한 상영관'이 더 맞다고 보여집니다. 몇 년 전에 본 굿 나잇 앤 굿 럭이 연상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의 시사회를 KU시네마테크로 잡은 것은 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됩니다.

5. 시간 잡히는대로 한 번 더 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거 보려면 원작을 독파할 필요가 있지만 그 '원작의 번역'이란게 상당히 평이 안 좋다고 들어서(...) 고민 중. 원작 안 보고 두번째 봤다간 이번에도 발릴 가능성이 높아서(...) 봐야는 하는데 번역본이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된다면 어불성설이니까요.

다음 작품은 아마 아티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무성영화는 대학에서 강의받을 때 이후로 오랫만에 보는데다가 이게 2011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라서 기대중. 그 다음은 아마 휴고가 될 것 같고... 그 중간에 made in Spielberg(...)라는 워 호스를 볼까말까 고민 중. 매주 주말마다 나가서 보긴 그러니까 평일날 시간 생기면 보려고 합니다.

P. S :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피터 길럼이 오히려 조지 스마일리의 게리 올드만보다 인상적인 이유가 사실 위에서 이야기한 '특이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구축된 캐릭터'와 연관이 있습니다. 피터 길럼은 조지 스마일리보다 더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느낄 수 있거든요.(...) 머리가 금발이지만 목소리 톤은 역시 셜록 맞습니다(야)

P. S 2 : ...이 영화는 예고편이 어느 정도 훼이크입니다. 물론 내용 자체는 맞는데 편집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딴 얘기를 하고 있음(...)

심지어 OST조차 훼이크입니다! 스탭롤 직전 에필로그를 다룬 라스트 신에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La Mer 듣고 경악을 했음. 이거 대체 뭐야!!!!(그리고 스탭롤이 나올때 마지막으로 흘러나오는 Tinker Tailor Soldier Spy(...))

Cast in the name of God
Ye not Guilty
by Hineo | 2012/02/12 18:18 | 쓸데없는 잡담 | 트랙백(1) | 덧글(2)
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12/02/12 20:55

제목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미 · 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영국 정보부 '서커스'의 국장 컨트롤은 소련 측이 정보부 내에 통칭 '두더지'로 불리는 이중간첩을 심어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관련 정보를 갖고 있다는 헝가리 장성을 망명시키기 위해 민완요원 짐 프리도를 부다페스트에 파견한다. 하지만 프리도는 정체가 탄로나서 살해당하고, 컨트롤과 그의 심복인 조지 스마일리는 작전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직한다. 컨트롤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 스마일리는 '두더지'의 정......more

Commented by gforce at 2012/02/12 18:24
로저 이버트가 플롯 이해를 못해서 혼란스럽다는 평을 내려서 단단히 대비하고 봤는데 시리아나보다는 훨씬 친절하더군요. 원작 안 읽었는데도 플롯 이해는 문제가 없었는데, 연출쪽에서 어? 하는 부분이 좀 있었음...
Commented by 잠본이 at 2012/02/12 20:55
예고편의 훼이크도가 거의 200%에 근접하는 신의 편집술(...)
다행히 저는 예고편 내용을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에서 봐서 화를 면했지만... 기대했던 분들은?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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